시 한 수 놓고 갑니다.^^

박래녀 0 1,940 2008.10.08 03:32
느티나무
박래녀


내 숙명은 기다리는 일
어린 묘목으로 땅내 맡는 순간
하늘을 어떻게 가릴까 그림 그렸고
조금 더 자라 동구 밖 지킴이로 섰을 때
김씨 집 며느리 바람 나 달아나자
어미 기다리는 어린 남매 놀이터 되어주어야 했고
집 떠난 자식들 기다리며 먼 눈 바라기 하는
박씨 할멈 눈물도 닦아 주어야 했고
초가집이 양철 지붕으로
양철지붕이 양옥으로 바뀌어
시절 좋아졌다지만
너나들이 하던 동네 사람들
이승 떠나는 상여 길 지켜보며
한과 설움 꾹꾹 눌러 내속 채우다보니
가지는 축축 늘어져 하늘 가리건만
어떤 때는 속이 텅텅 비기도 하고
어떤 때는 단단하게 옹이 져 살다가
길난다, 물에 잠긴다, 밑동 잘리는 아픔 뒤에
어느 장인 손에 끌려 찻상으로 거듭나
어떤 시인의 대청마루에 누웠더니
내 위에 흙으로 빚은 찻잔 놓이고
마음으로 다린 연두 빛 차 한 잔에
삶과 문학, 인생과 시절 논하는 문객
호방하게 웃고 있으나
나는 아직 내 때깔 벗어던지지 못하고
동구 밖 느티나무로 남아
기다리는 일 숙명으로 아는데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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